종로의 기원 앞을 지나며
요즘 바둑 기원의 형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인터넷 바둑이 생기고, 휴대전화로도 쉽게 대국을 할 수 있게 된 뒤로 동네마다 있던 기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특별한 소식도 아니다. 그래도 가끔 서울 종로 쪽을 지나가다 보면, 아직 불이 켜진 기원 간판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든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종로는 예전부터 바둑의 중심 같은 곳이었다. 낡은 건물 2층이나 3층에 올라가면 작은 기원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둑판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흐르던 곳. 지금도 그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다는 것이다.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이 묵묵히 돌을 놓고 있고, 한쪽에서는 훈수를 두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기원이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다. 퇴근하고 들르는 사람도 있었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둑을 두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갔다. 그리고 가끔은 내기 바둑도 빠지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만 원짜리 한 장을 걸고 두는 승부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해쯤 전의 일이다. 만 원 내기를 하고 한 판을 두었는데, 끝내기에서 승부가 갈렸다. 이긴 사람이 웃으면서 지갑을 넣더니, 잠시 뒤 근처에서 족발을 시키고 막걸리를 몇 병 가져오게 했다. 누가 시키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기원에 있던 사람들이 둘러앉아 접시를 나누고, 막걸리를 따라 주면서 방금 둔 바둑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서 젖혔어야지.”
“아니야, 그 전에 끊었어야 돼.”
이런 말들이 오가고, 누군가는 또 판을 벌이고, 누군가는 술잔만 들고 구경을 했다. 그날은 바둑을 둔 시간보다 이야기하고 웃던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풍경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기원은 단순히 바둑을 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누가 이기면 국수를 시키고, 누가 지면 막걸리를 사 오고,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금방 말을 섞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느슨한 분위기가 기원의 진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장면은 점점 보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집에서 컴퓨터로 바둑을 두고, 휴대전화로 기보를 본다. 굳이 기원까지 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종로의 몇몇 기원에는 아직 예전의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둑판 위에 돌이 놓여 있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고,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훈수 소리가 들린다.
언젠가는 이런 기원들도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래도 종로 골목 어딘가에 아직 불이 켜진 기원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반갑다. 오래된 간판 아래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한 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누군가는 또 작은 내기를 걸고 바둑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예전처럼 족발과 막걸리를 시켜 놓고 한참 동안 바둑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아직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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