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바둑
나는 가끔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코인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둔다.
이 세계에서 코인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형세판단을 할 때 쓰이고,
대국 분석을 할 때도 쓰이며, 때로는 자존심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코인이 걸린 한 판은 그냥 한 판이 아니다.
무료 대국에서는 대충 두던 사람도
코인이 걸리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나 역시 그렇다.
내기가 시작되면 손끝이 차가워지고
모니터 속 바둑판이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보인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오직 수읽기만 남는다.
내 경험으로는
내기가 걸린 바둑에서는 실력이 평소의 1.5배는 나온다.
그날도 심심해서 접속했다가
코인을 걸고 두는 방 하나에 들어갔다.
닉네임은
"강철타수"
승률이 높았다.
프로는 아니지만, 꽤 둔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코인을 잃으면 형세분석을 못 한다.
하지만 이런 판을 피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나는 입장 버튼을 눌렀다.
"코인 500?"
상대가 먼저 말했다.
평소 같으면 부담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손이 먼저 움직였다.
"콜."
대국이 시작됐다.
초반은 평범했다.
정석대로 흘러갔고 서로 무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반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상대의 수가 날카로워졌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자리에서
이상하게 한 수 한 수가 깊게 보였다.
여기서 끊으면
저쪽이 무너지고
저걸 살리면
이쪽이 두터워진다.
머릿속에서 수읽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깨달았다.
아,
지금 내기바둑 모드다.
손이 떨리는데
수는 더 정확해진다.
심장이 빨리 뛰는데
판은 더 조용해진다.
상대도 느꼈는지
생각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중앙 전투에서 승부가 갈렸다.
내가 먼저 끊었고
상대가 무리하게 살리려다
돌이 엉켰다.
나는 끝까지 읽었다.
한 수
두 수
세 수
그리고 마지막에
상대의 대마가 죽었다.
잠시 후
"…"
채팅창에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패배.
강철타수가 졌다.
코인 500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나는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겼다는 기쁨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내기바둑이다.
내기가 걸리면
사람은 달라진다.
고수도 흔들리고
하수도 각성한다.
무료 대국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수가 나오고
평소라면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코인을 건다.
실력을 시험하려고.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숨어 있는
진짜 나를 보기 위해.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