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자 시절의 나는 바둑판 위에서 늘 조급했다.
돌을 놓기만 하면 바로 집이 생겨야 마음이 놓였고,
상대가 두텁게 쌓아 올리는 세력은 괜히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가 빠져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치훈이었다.
그의 바둑은 놀라울 정도로 냉정했다.
큰 싸움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길 준비가 끝나 있는 바둑.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실리를 쌓아 올리고
상대가 만든 세력은 정확한 수읽기로 깨뜨렸다.
나는 그 바둑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래, 바둑은 역시 실리야.”
그날 이후 나는 무조건 실리부터 챙겼다.
귀에 들어가고, 변을 차지하고, 작은 집이라도 먼저 확보했다.
상대가 중앙에 세력을 쌓든 말든
나는 내 집부터 만들었다.
초반에는 꽤 이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졌다.
집은 분명 내가 더 많아 보이는데
끝나고 보면 항상 내가 져 있었다.
상대는 중앙을 두텁게 만들고
내 돌을 몰아붙이고
어느 순간 내 집이 다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는 거지…?”
그때 나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
동네 기원에서 늘 조용히 앉아 있던 중년의 고수였다.
그는 내 바둑을 한 판 보더니 말했다.
“너, 조치훈 좋아하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웃었다.
“초급자가 실리만 챙기면 다 그렇게 둬.”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실리 바둑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아주 좋아.
근데 그건 수읽기가 되는 사람 이야기야.”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는 바둑판에 돌을 몇 개 놓았다.
“봐라. 실리 바둑은 이렇게 두는 거야.”
귀를 챙기고
변을 챙기고
상대 세력을 얇게 만들고
정확한 수로 파고든다.
“이거 가능해?”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못 합니다.”
그는 웃었다.
“그래서 초급자는 실리 바둑 두면 안 돼.”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둬야 해요?”
그는 중앙에 돌을 놓았다.
툭.
“세력으로 둬.”
그날 이후 내 바둑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귀를 양보했다.
변도 양보했다.
대신 중앙을 향해 나갔다.
두텁게 두고
끊기지 않게 두고
싸워도 버틸 수 있게 두었다.
처음에는 더 많이 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둑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 돌이 약한지
내 돌이 강한지
어디서 싸워야 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고수가 다시 말했다.
“이제 슬슬 실리 둬도 된다.”
나는 웃었다.
“왜요?”
그가 말했다.
“이제 네가 세력을 알거든.”
그날 나는 오랜만에
귀를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번에는
상대의 세력이 보였다.
어디가 약한지
어디를 깨야 하는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읽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조치훈의 바둑은
처음부터 실리를 둔 게 아니었다.
세력을 다 알고 난 뒤에
실리를 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후배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초급자는 세력으로 둬라.”
“두텁게 둬라.”
“우주류도 좋다.”
“세력을 알게 되면
그때 실리를 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덧붙인다.
“선실리 후타계는
고수가 된 다음에 둬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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